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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개발도상국이여, 시장에 대항하라 - 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

by 미뇽쓰 2022. 5. 30.

 

  1841년 독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영국이 자신들은 높은 관세와 광범위한 보조금을 통해서 경제적인 패권을 장악해 놓고서 정작 다른 나라들에게는 자유 무역을 권장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영국이 세계 최고의 경제적 지위에 도달하기 위해 스스로 타고 올라간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 고 비난하며 "정상의 자리에 도달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뒤따라 올 수 없도록 자신이 타고 올라간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것은 아주 흔히 쓰이는 영리한 방책"이라고 꼬집었다.(p.34)

 

나쁜 사마리아인들(Bad Samaritans).

제목만 들으면 무슨 소설책 같지만, 이 책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이자 경제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인 장하준 교수가 소위 '자유무역'의 환상과 실제 자본주의 역사를 통해 본 경제발전의 방법에 대해 쓴 책이다.

(부제목인 The Myth of Free Trade and the Secret History of Capitalism을 보면 이 책이 뭘 얘기하고자 하는지 명확하다)

 

성경에 인용된 '착한 사마리아인'은 노상강도에게 약탈당한 남자를 도와주는 사람이지만,

원래 사마리아인은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무정한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당시에 있었다고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나쁜 사마리아인은 개발도상국에게 자유무역을 주장(강요)하는 미국, 영국 등 소위 부자나라의 신자유주의자들을 말한다. 장하준 교수가 나쁜 사마리아인이라고 하는 이유는, 개발도상국은 아직 경제가 충분히 발전하지 않아 자립할 수 없는 곤경에 처해 있는데, 부자 나라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유 무역이 모두에게 이롭다면서 (그러나 사실상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자유무역과 그밖에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의 정책을 강요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역사를 살펴보면, 영국과 미국은 오랜 세월에 걸쳐 세계에서 가장 보호주의적인 나라들이었다.

미국을 예로 들면, 초기 미국 재무장관이었던 해밀턴은 (영국에 비해) 미국과 같은 후진적인 나라는 외국의 경쟁으로부터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그 산업들이 자기 발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육성해야 한다는 소위 '유치산업론' 을 주장했다. 유치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은 보호 관세와 수입 금지령, 보조금, 핵심원자재의 수출 금지령, 산업 원자재에 대한 수입 자유화와 관세 리베이트, 발명품에 대한 포상과 특허 부여, 상품의 표준에 대한 법령 제정, 금융과 운송의 하부 구조 개발 등 각종 정책을 동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자 나라들은 마치 처음부터 자유무역을 했던 것처럼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그리고는 그들의 경제가 자유무역을 통해 성장한 것처럼 왜곡하고 개발도상국에게도 자유무역을 강요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은 경제 측면에서는 어린아이이고, 부자 나라들은 다 큰 성인과 같다. 어린아이와 성인이 같은 규칙으로 게임을 한다는 것은 부당함에도, 부자 나라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어선 안된다며 똑같이 무한 경쟁할 것을 주장한다.

게임의 규칙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개발도상국은 질 수 밖에 없다.(경제발전을 할 수 없다)

그런데도 부자 나라들은 자신들이 강요하는 정책 때문이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잘못된 문화나 국민성(게으름), 또는 부패한 정치 탓이라고 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이 서로 촉진하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고 한다.

(즉 민주주의가 발전해서 시장경제가 발전하고 다시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하지만 민주주의는 1인1표, 시장은 1원1표이기에 민주주의와 시장은 근본적으로 충돌하는 관계이다. 

(그래서 예전에 재산을 기준으로 투표권을 제한하기도 했다)

또한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제를 정치에서 분리해서 전문가들(자신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치와 경제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시장은 그 자체가 정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쁜 사마리아인들이 경제의 탈정치화를 독촉하는 것은 사실상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다.

 

 

 

책 말미 개발도상국이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도록 하면 장기적으로 나쁜 사마리아인들에게도 이익이 된다며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소득이 늘어나면 나쁜 사마리아인 부자 나라들이 팔 수 있는 시장이 넓어지므로)

지극히 '이기적인', 나쁜 사마리아인 국가들에게도 이득이 되는 '이단적인' 정책을 용인할 것을 얘기한다.

부자 나라들이 과거에 나쁜 사마리아인들처럼 행동하지 않은 적이 있고, 그 시기 경제적으로도 훌륭한 결과를 낳았기에 그 경험에서 우리는 교훈을 찾고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6.25 전쟁 이후 세계에서 손꼽히는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이제는 세계 경제 10위권 안팎의 잘사는 나라의 국민이 된 저자의 입장에서

아마도 다른 개발도상국들도 경제가 발전해서 다 같이 잘 살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 클 것이기에

이런 연구를 계속하면서 개발도상국들에게 '시장에 대항하라'고 외치고 있는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