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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어느 늦덕의 고해 - Here, I remember you 마왕

by 미뇽쓰 2021. 1. 18.

'이십세기 힛트송'이란 내가 즐겨보는 프로그램에서 넥스트의 'Here, I stand for you'가 나오는 걸 보고

그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신해철과 넥스트의 음악을 요즘 다시 듣기 시작했다.

물론 가끔 히트곡 위주로 듣긴 했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앨범 전곡을 제대로, 상세히 들으면서

매우 뒤늦은, 그렇지만 어느 때보다 진지한 덕후(?)가 되는 중이다.

 

 

 

 

 

 

마왕(본명 신해철보다 이 별명이 왠지 편해 앞으로 이렇게 쓰련다)은 내가 꼬꼬마 초딩 때 데뷔해서

발라드와 (조금은 느끼한?) 댄스곡을 부르던 인기 아이돌(?) 가수였다.(당시 어린 내가 대부분의 노래를 알 정도로)

그런 사람이 어느 순간 넥스트라는 팀을 만들더니,

락의 불모지 대한민국에서 듣도 보도 못한 사운드를 선보이며 국내 최고의 밴드가 된다.

중학교 3학년때 메탈리카를 처음 접한 나는 그때부터 헤비메탈과 외국음악에 심취했는데

그때 산 넥스트의 3집 <World> 앨범이 내가 산 국내밴드 앨범 중 유일하게 만족스럽게 들은 음반이었다.

(다른 국내밴드 앨범들은 사운드가 내 성에 차지 않았다)

구성도 특이하고, 국악이 들어간 것도 특이하고, 잔잔한 발라드부터 때려부수는 곡까지 다양해서 정말 좋아했다.

그렇지만 어린 나이었기 때문에 가사 내용도 속지 이미지도 왠지 어렵고 무겁게 느껴졌었다.

 

 

 

없는 중딩 용돈 쪼개서 산 이 앨범 지금은 없다 테이프였는지라ㅠㅠ

 

 

 

근 20년 넘은 지금 이 나이에 다시 마왕의 음악이 와닿는건

멋진 멜로디 못지 않게 너무나 공감가고 생각할꺼리를 많이 주는 가사 덕분이다.

어릴땐 뜻도 모르고 따라 부르던 노랫말이, 이젠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가 그 노랫말을 썼을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떤 상황과 기분이었을까를 상상하며 들으니

감탄이 나올 정도다.

진짜 이 사람 천재였구나.

 

아직도 세상을 보이는 대로 믿고 편안히 잠드는가
그래도 지금이 지난 시절 보단 나아졌다고 믿는가

무너진 백화점 끊겨진 다리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 어느 누구도 비난 할 순 없다 우리 모두 공범일 뿐

발전이란 무엇이며 진보란 무엇인가
누굴 위한 발전이며 누구를 위한 진보인가

아득한 옛날엔 TV는 없어도 살아갈 순 있었다
그나마 그때는 천장이 무너져 죽어가진 않았다

발전이란 무엇이며 진보란 무엇인가
누굴 위한 발전이며 누구를 위한 진보인가

- N.EX.T < 세계의 문 Part 2. 우리가 만든 세상을 보라 > -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경제성장이 지속되면서 우리는 선진국이 된 줄 착각했지만

엄청난 참사를 겪으면서 겉으로만 부풀려진 빈껍데기 성장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사람의 생명보다, 안전보다 그저 빨리 빨리 만들어 보여주기 바빴던 우리의 진짜 모습을 보게된 것이다.

그런데 정말 안타깝게도 이런 현실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세월호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봐도 생명과 안전이 우선이 아니라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기 급급하다.

그놈의 발전이 뭐고 진보가 뭔지, 도대체 누굴 위한 건지.  

발전과 진보라는 미명하에, 옆에서 누가 쓰러지던 죽던 말던, 각자 살기 바쁜 나머지

어린시절의 순수함과 인간성을 점점 잃어가는 우리들의 외로운 모습

회색 빛의 하늘과 회색 빛의 빌딩 속 회색 얼굴의 사람들.

 

모두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손을 내밀어 악수하지만
가슴 속에는 모두 다른 마음 각자 걸어 가고 있는 거야

아무런 말 없이 어디로 가는가 / 함께 있지만 외로운 사람들

- N.EX.T < 도시인 > -

 

 

1996년 KBS 빅쇼 공연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x3ntS2z1cDo&t=350s)

 

 

 

 

생전 마왕, 교주 등으로 불리며 카리스마 그 자체이자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사람으로 인식하지만

노랫말을 들어보면 그 역시 내면으로 약하고 내일을 고민하며 두려워하는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를 '멋있다'고 느끼는 건

두려워 하는데서 끝나지 않고 스스로 자신만의 길을 찾아나가려 하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난 약해 질때마다 나에게 말을 하지 / 넌 아직도 너의 길을 두려워하고 있니
나의 대답은 이젠 아냐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가네 /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뿐


- 신해철 < 나에게 쓰는 편지 > -

 

무엇을 해야하나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알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나의 첫 깨어남이었지

난 후회하지 않아 아쉬움은 남겠지만 아주 먼 훗날까지도
난 변하지 않아 나의 길을 가려하던 처음 그 순간처럼

자랑할 것은 없지만 부끄럽고 싶지 않은 나의 길
언제나 내곁에 있는 그대여 날 지켜봐주오


- 신해철 < 길 위에서 > -

 

세상의 바다를 건너 욕망의 산을 넘는 동안
배워진 것은 고독과 증오뿐
멀어지는 완성의 꿈은 아직 나를 부르는데

난 아직 내게 던져진 질문들을 / 일상의 피곤 속에 묻어버릴 수는 없어
언젠가 지쳐 쓰러질 것을 알아도 / 꿈은 또 날아가네 절망의 껍질을 깨고

이제는 쉽게 살라고도 말하지 / 힘겹게 고개 젓네 난 기억하고 있다고
언젠가 지쳐 쓰러질 것을 알아도 / 꿈은 또 날아가네 절망의 껍질을 깨고

- N.EX.T < The dreamer > -

 

 

참, 드물게 언행일치의 삶의 살다간 뮤지션이자 연예인.

'자랑할 것은 없지만 부끄럽고 싶지 않은 나의 길' 이란 가사가 계속 눈에 밟힌다.

그렇게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간 이유가

스스로에게,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였을까.

그래서 생이 끝나갈 때 지나간 세월에 후회가 없도록.

 

아...한번 공연이라도 가봤으면 좋았을텐데.

그의 음악과 이야기를 영상이 아닌 현장에서 생생하게 들어봤으면 정말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만 남는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그대여

- 무한궤도 <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 -

 

 

영원한 젊음의 응원가가 된 <그대에게>. 이불속에서 멜로디언으로 이런 곡을 만들수 있다니...

 

 

 

7살때 병아리 얄리가 죽은 걸 보고 '죽음'과 인생의 유한함을 깨달았다는 마왕

그래서 얼마가 될지 알수는 없지만 세상에 있도록 허락된 시간만큼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런 마왕의 삶을 보며... 나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느낀다.

내일 당장 어찌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오늘 내가 살아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음에 감사해야지.

내가 지금 누리는 어쩌면 지루하기까지 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7년전 떠난 그와 남은 그의 가족들이 얼마나 바라는 것이었을까를 생각해보면 가슴 한켠이 시큰하다.

(그리고 그를 이렇게 만든 그 의사..... 생각하면 열받으니까 스탑.여기까지.)

 

 

 

고맙습니다. 마왕.

우리에게 수많은 보석같은 음악을 남겨주고

우리 스스로 삶을 바로 바라보고,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셔서.

 

부디 그곳에서 평안하시길...

그리고 여기서 당신을 추억하는 사람들을 잊지 마시고

다음 세상에서도 멋진 음악인이자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시길...

 

 

 

출처 : OSEN DB

 

 

 

(+)

 

마왕의 비상한 두뇌(IQ가 150?)와 다독에서 나온 놀라운 통찰력, 언변, 촌철살인,

기타 마왕에 대한 좀더 궁금하다면 마왕에 대한 책을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

그의 삶과 음악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뭣보다, 재밌다.ㅋㅋㅋㅋ(욕설 있음 주의)

인터넷 뉴스를 보니 마왕의 데뷔 이후 발자취를 다룬 <그대에게>라는 영화도 만들어질거라 한다.

조만간 영화관에서 만나볼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