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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내안의 잠들었던 감수성을 깨우자 - 책은 도끼다 / 박웅현

by 미뇽쓰 2020. 10. 17.

 

 

 

몇년전 직장상사와 대화를 하다가

문득 나에게 <책은 도끼다>라는 책을 읽어봤냐며, 본인은 정말 감명깊게 읽었다고 적극 추천하셨다.

제목이 신선해서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고(책이 도끼라고?)

뭣보다 책도 많이 보시고 점잖은 성격의 상사가 추천할 정도면 좋은 책이겠다 싶어 일단 구입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지난 몇년간 책장에 그저 꽃혀 있었더랬다.

(예전에 김영하 작가님이 말했던가? 책을 읽으려고 사는게 아니라 사놓은 책을 읽는거라고^^;;)

 

 

몇년이 지나 드디어, 먼지를 털어내고 읽어보았다.

그리고 첫장을 펼친 순간 왜 책이 도끼라고 했는지도 알게되었다.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되는거야."

(1904년 1월, 카프카의 책 <변신>중 '저자의 말'에서)

 

 

 

 

 

 

 

책속에 예쁜 스티커가 함께 들어있다

 

 

책은 도끼다
국내도서
저자 : 박웅현
출판 : 북하우스 2011.10.10
상세보기

 

 

 

이 책은 부제(박웅현 인문학 강독회)에도 적혀있듯이

광고제작자로 유명한 박웅현씨가 경기창조학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011년 2월부터 6월까지 3주에 한번 강독회를 하면서 소개했던 책들, 학생들과의 대화내용 등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카프카의 말처럼 저자에게도 책은 얼어붙은 감성을 깨뜨리고 잠자던 세포를 깨우는 도끼였다고 한다.

책을 읽었더니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느껴지지 않던 것이 느껴지면서 덕분에 촉수가 예민해졌다.

예민해진 촉수는 광고업이라는 자신의 생업을 도왔을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싶어 인문학 강독회를 하게 되었고, 이 책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목차도 강의와 같이 총8강으로 이루어져있고,

각각의 챕터(강의)에서 그날 강의주제와 맞는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래도 한번쯤 들어봐서 알고 있는 우리나라 작가들(고은, 김훈 등)의 책부터 조금은 낯선 외국 작가들(미셀 투르니에, 장 그르니에 등),

그리고 들어는 봤지만 아직 엄두를 못낸 책들(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안나 카레니나 등)까지.

 

 

 

논에서 잡초를 뽑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벼와 한 논에 살게 된 것을 이유로

'잡'이라 부르기 미안하다

 

-- <이쁘기만 한데...> 전문 (p.23)

 

 

 

순간 한대 맞은 것 같은, 눈이 번쩍 떠지는 표현이었다.

관점을 바꾸니 이렇게나 달리 보이는구나.

잡초든 벼든 똑같은 식물인데, 단지 논에 있다는 이유로 즉,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잡(雜)'으로 분류되어 제거대상이 되는 신세...

만약 그 '잡'초가 사람에게 벼보다 도움이 되었더라면, 오히려 벼를 없애고 잡초를 심겠지?

좀더 나아가서 존재 자체만으로 인정하지 않고 필요에 의해 쓰고 버리는 우리의 태도,

(언제든 그런 대접을 당할지도 모르는데) 나도 여지껏 어떤 것을 혹은 누군가를 그렇게 대하고 있지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 잡초의 근성,

아무리 뽑고 그 독한 농약을 뿌려도 다시 생기는 잡초의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했다.

 

 

그러고 보니 이 시도 생각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골목에 다타고 버려진 연탄재

평소에 그저 쓸모없는 쓰레기쯤으로 여겨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고

때로는 사람들의 화풀이대상마저 되었던 연탄재를 본 시인은

거기에서 누군가를 위해 따뜻함을 나누는 존재를 떠올린다.

안도현 시인의 다른 시 <연탄 한 장>을 보면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 삶이란 / 나 아닌 그 누구에게 /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이라고 한다.

대부분 무심코 지나치는 연탄을 보고 사람과 삶을 떠올리는 시인이 정말 대단하다.

 

 

 

내가 갖고 있는 안도현 시인의 시집 두 권... 정말 좋아하는 시집들인데 모처럼 다시 읽어봐야겠다

 

 

 

 

 

삶, 즉 사람의 힘, 기쁨의 힘, 감탄의 힘을 모두 포함하는 삶 외에는 다른 부는 없다.

고귀하고 행복한 인간을 가장 많이 길러내는 나라가 가장 부유하다.

자신의 삶의 기능들을 최대한 완벽하게 다듬어 자신의 삶에,

나아가 자신의 소유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도움이 되는 영향력을 가장 광범위하게 발휘하는 그런 사람이 가장 부유한 사람이다.(p.122)

 

 

부유함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풍부한 감수성과 감성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하긴, 아무리 뭔가 많이 갖고 있더라도 그걸 충분히 느끼고 만족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저자의 말대로 행복은 주어지는 조건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걸 보면 환경이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 삶을 어떻게 만드는가는 개인들의 선택에 달렸다고 할 것이다.

 

 

그러고보니 문득 대학시절 도서관 가던 길이 떠올랐다.

파란 하늘, 산들산들 불던 바람,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던 햇빛,

평범한 하루였지만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앞으로 나는, 작은 것이라고 함부로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행복을 발견하고 행복을 선택하면서 살아야지.

특별할 것 없지만 행복한 기억을 차곡차곡 쌓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