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우리집은 소위 '중산층'이었다.
아버지는 당시 주유소를 운영하는 소장이었고, 우리집은 그런대로 넓은 2층 독채 전세집이었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당시엔 비쌌던 소고기 생갈비 외식을 한적도 있고,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먹어본적도 있으며, 백화점에서 내 옷을 사주시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의 주유소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그리고 아버지는 5년간 잠적하셨다)
코딱지만한 방두칸에 집안에 화장실 없이 공동화장실을 써야하는 집으로 이사를 왔고
전업주부였던 엄마는 졸지에 공장에 다니며 생활비를 버셔야 했으며
나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장학금을 신청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때 나는 막 사춘기가 시작되던 나이여서 우리집 상황이 이렇게 나빠진게 원망스러웠다.
다니고 싶던 학원도 못다녔고, 친구들이 갖고 있는 그 당시 유행하던 것들(CD플레이어 등)을 살 수 없었으며
용돈을 더 달라고 할수 없었다. 용돈을 많이 줄 형편이 안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난 덕분에 반 강제로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고
그때 용돈을 벌어보려고 했던 아르바이트 덕분에 나한테 육체노동이 맞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며
(공장에서 3일 정도 일했는데 그길로 몸살이 나서 앓아누웠다;;)
나중에 직업을 가지면 성실하게 일해야겠다, 그리고 미래의 배우자도 그런 의식이 있는 사람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런 내 경험만 봐도 어릴 때 만들어진 경제관념이 중요하다.
한가지 아쉬운게 있다면 직업의 중요성, 절약과 저축의 미덕까지는 깨우쳤는데
일찌감치 돈과 경제공부, 그리고 투자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투자를 하는 분들이 아니었고 돈에 대해 배우지 못하셨다.
그런데 살아보면 볼수록 돈이 삶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도 어디에서도 돈에 대해 (특히 실용적인 부분에서) 가르쳐주는 곳이 없다.
그래서 나도 이제야 겨우 돈에 관심을 갖고 돈을 알려고 하고 돈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내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일찍 돈과 경제에 대한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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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목은 <아이가 10살이 되면 투자를 시키세요(kodomo ga 10sai ni nattara toushi wo sasenasai)>이다.
저자인 요코야마 미쓰아키는 자산관리사이자 금융컨설턴트로, 돈의 사용법을 개선하는 가계 재생 프로그램을 독자적으로 만들어 가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확실하게 재생하도록 상담을 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23000건 이상의 상담을 했다고 한다.
저자는 자신이 젊은 시절 도박으로 한순간에 번 돈을 잃었던 과거 경험과 상담하면서 본 고객들의 사례 등을 토대로 어렸을 때부터 돈에 대한 관심, 경험, 공부를 통해 자신의 기준을 세우는게 필요하다고 보고, 6명의 자녀에게 일관되게 경제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이런 교육이 아이들이 10살이 되면 시작하라고 하는 이유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대체로 아이가 10살 정도가 되면 스스로 계획해서 지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부모와 자녀가 함께 돈에 대한 지식, 투자에 대한 정보를 공부하면 아이의 금전감각이 한층 발달한다.
경제공부의 시작은 용돈관리에서부터다.
정기적으로 용돈을 주고 용돈을 쓴 내역을 용돈기입장에 적게 하는데, 소비/낭비/투자로 구분해서 적는다.
구분기준은 필요한 곳에 썼으면 소비, 필요하지 않지만 갖고 싶어서(하고 싶어서) 썼으면 낭비, 당장은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장래에 도움이 될만한 곳에 썼으면 투자다.
필요한데 쓰는 것과 원해서 쓰는 것,
즉 needs와 wants를 구별할 수 있게 함으로써 불필요한 소비를 줄일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이때 중요한 것은 용돈을 다썼다고 해서 절대 당겨쓰지 못하게 한다.
대신 세뱃돈이나 친척들에게 받은 용돈의 일부를 연간 자금으로 모아두었다가 용돈이 펑크났을 때, 또는 꼭 필요하거나 갖고싶은 것을 살때 쓰도록 한다.
다음 단계는 실제로 아이 명의의 계좌, 직불카드를 만들고 투자를 하는 것이다.
계좌에 실제 입금이 되는 걸 눈으로 보면서 아이는 저축하고 싶은 마음이 더 많이 생긴다.
카드는 잘만 사용하면 아주 편리하지만 어릴때부터 신용카드를 쓰면 남발할 수 있으므로 직불카드를 먼저 만들어 어른이 될때까지 카드사용법을 익히게 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최대 장점인 (은퇴할때까지) 시간이 많다는 것을 활용, 적은 금액으로도 복리 마법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의 적립식 펀드 가입을 권장한다.
국제경제 감각을 익힐 수 있도록 용돈을 달러로 준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렇듯 생활금융을 어릴때부터 직접 해보면 뉴스가 실제 피부에 와닿고 생생한 경제공부가 된다.
저자는 또한 가족간의 경제상태 공유와 씀씀이 점검을 위해 가족재정회의를 추천한다.
한달에 한번 가족끼리 모여서 이달의 수입과 지출내역을 공개하고, 특별히 지출해야할 건이 있는 경우 여기서 안건을 올려 승인을 받는 것이다.
가족재정회의를 하면 자녀들이 우리집의 경제상황과 앞으로의 목표(예컨대 주택자금 마련)에 대해서 알게 되고 거기에 동참할 수 있을 뿐더러 자신의 소비패턴을 다시 점검해보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된다.
아이가 돈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고 경제를 공부하게 하면서 중요한 것은
아이가 스스로 돈을 대하는 자신의 기준을 제대로 정립하도록 키워야한다는 점이다.
이건 부에 대한 다른 책들의 내용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얼마가 있으면 부자인가? 나에게 과연 얼마가 필요한가? 돈을 쓰는 우선순위가 무엇인가?
돈에 대한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이 없다면, 아마 평생 돈에 끌려다니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아이의 경제공부를 어떻게 시킬까, 경제관념을 어떻게 잡아줄까 하고 보게 된 책이
도리어 나 자신을 공부하게 해주었다.
나는 그동안 필요에 의한 소비가 아니라 갖고 싶어서 한 소비, 낭비를 한건 없었나?
목적에 맞는 적절한 금액의 자금을 갖고 있나? 이리 저리 휩쓸려 투자하고 가입한 상품은 없나?하고
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10여년 전 그만두었던 가계부 쓰기도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우리집 재정상태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알려면 일단 자료가 필요하니 말이다.)
그리고 아이들과 용돈 주는 문제, 아이들 돈 관리하는 방법도 이 참에 다시 점검해볼 계획이다.
이 책 덕분에 아이들과 함께 나도 경제공부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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