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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필요한 건 따뜻한 말한마디 그리고 진심을 다한 이해 - 82년생 김지영 / 조남주

by 미뇽쓰 2020. 9. 29.

 

 

82년생 김지영
국내도서
저자 : 조남주
출판 : 민음사 201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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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상처주지도, 받지도 않고 살 수 없는걸까.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 제목을 처음 들었을때

제목에서 느껴지는 동질감에 관심이 갔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그냥 나이, 이름만 비슷한게 아니라 소설속 그녀의 삶마저도 비슷했다.

책장 구석에 잠들어 있던 내 어릴적 일기를 보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 우리 또래들도 다들 나처럼 살았구나.

그렇게 남 몰래 상처 받고 힘들어했구나.

 

 

그렇다.

82년생 김지영은 일반적인 소설속 주인공들과는 다르게

정말 대한민국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 같은, 지극히 평범한 30대 주부이다.

남아선호사상이 여전히 뚜렷이 남아있던 시절 태어나

남학생들, 남자 선후배들 틈바구니에서 힘겹게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해서 예쁜 딸을 얻었지만 직장생활과 병행할 수 없어 전업주부가 되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없는 평범한(행복한) 30대 여성이었지만

여지껏 살면서 알게 모르게 많은 상처를 받았고, 편견과 싸우며 살았다. 

그런데 정작 주변 사람들은 그런 상처를 준 것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김지영이 이상증세를 보인다.

김지영이 어머니 또는 친했던 선배가 빙의된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가 그동안 속으로 참고 말하지 못했던 것을 어머니, 또는 선배가 되어 대놓고 이야기하는 바람에

가족들은 충격에 빠지고, 김지영이 정신과 상담을 받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김지영의 앞으로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졌다.

과연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이제라도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잘해주려나?

그런데 뒷맛이 좀 씁쓸한게, 

김지영을 상담했던 의사 부인도 김지영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는 내용이 소설 끝에 나오기 때문이다.

 

 

 

 

소설이 인기를 얻어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 역시 어릴적 손자만 좋아하셨던, 지독한 남아선호 할머니에게 손녀인 이유로 차별받았고

(심지어 제사때 나오지도 못하게 딸들을 따로 방에 가두어놓으셨다;;)
초등학교 시절 이유 없이 시비 거는 남자애들이 이해되지 않았고 너무 싫었다.

 

그렇지만 진짜 힘든 일은 직장, 결혼, 그리고 육아 였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 본능적으로 모성애(?)가 있어서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아기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재우고 어느 하나 쉬운게 없었다.

하루종일 집안에서 말 못하고 울기만 하는 아이랑 나만 있으니 그야말로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다.

세상으로부터 나 혼자 고립됐다는 생각에 우울증이 올 지경이었다.

출산휴가 전부터 남편 외벌이로는 살림이 어렵겠다 싶어(그때만 해도 육아휴직수당 액수가 적었다) 휴직 없이 복직할 계획이긴 했지만

막상 집에서 아이를 키워보니 수입은 둘째치고 계속 아이를 돌볼 자신이 없었다. 

집안일보다 사무실 업무가 편하게 느껴졌고, 무엇보다 사람들과의 대화가 너무 그리웠다.

그래서 출산휴가 뒤 육아휴직을 하지 않고 바로 복직했다.

 

 

힘든 3개월간의 전업주부 생활을 끝내고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고 그러다보니 남편과도 많이 싸우게 됐다.

남편은 좋은 사람이지만, 역시나 전형적인 그 나이대 남자이기도 했다.  

집안일을 많이 했지만 어디까지나 도와준다는 개념이었고

육아 가사를 똑같이 분담해야한다는 것은 머리속 관념으로만 있을뿐이었다.

그래서 같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남편은 회식과 야근 심지어 개인적인 모임도 비교적 자유롭게 했지만

나는 엄마니까, 남편과 회식이 같은 날이면 당연히 내가 아이를 먼저 데리러 가야했고

직원들끼리 저녁을 먹거나 모임을 가질 때도 나는 애를 봐야해서 같이 갈 수 없었다.

분명 내가 원해서 낳은 아이였는데,

아이 때문에 내 생활과 경력을 포기해야하는 상황이 올수록

나는 남편을, 심지어 아이마저 원망하고 있었다.

나 스스로 성숙하려고 노력해야만 진짜 부모가 된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난 십여년이 인생 중 가장 힘든 시기였다.

직장에서도 실무자였기 때문에 일을 많이 해야했고

아이들도 아직 한창 어려서 손이 많이 가던 때였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끝이 없는 업무, 끝이 없는 집안일, 그리고 아이들까지...

시간을 거슬러 그때의 나를 만나게 된다면 위로해주고 싶다.

너는 잘하고 있다고, 

조금만 견디면 훨씬 덜 힘들고 괜찮아질거라고

그러니 슬퍼하거나 기죽지 말고 힘내라고.

김지영에게도 이런 따뜻한 말한마디가 필요했던게 아닐까.

며느리니까 당연히, 엄마니까 당연히 가 아니라

덕분에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우리 모두에게는 위로가 필요하다

 

 

 

 

남편과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봤다.(남편은 책을 읽진 않았지만 내용을 대충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은 역시 남자라 그런지 약간의 반감(?)을 갖고 있었다.

할머니, 어머니 세대들은 불평등하고 피해받았다고 자기도 인정하지만

요즘 여자들은 아니지 않냐고,

오히려 여자들이 지나치게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이다.

 

그런데 실은 나도 소설을 읽을 때 공감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여성이 받는 피해 위주로 써진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특히 말미에 첨부된 김고연주라는 여성학자가 쓴 작품해설은 조금 황당하게 느껴졌다. 

나도 여성으로 살면서 알게 모르게 부조리를 많이 겪었고 김지영의 삶이 이해되지만

그렇다고 '여성혐오'라는 단어를 사용할만큼 세상이 여성에게 적대적이었나 싶었다.

 

타인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성별이 다르면 더욱.

입장을 바꿔 남자들에게도 우리가 잘 모르는 아픔, 상처가 있을지 모른다.

예컨대 '78년생 김준호' 같은 책이 나온다면, 나는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에서 남성으로서의 삶의 무게도 여성 못지 않게 무거울 것 같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 사람을 잘 안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함부로 대하기까지 한다.

그게 상처가 될거란 생각은 하지 못한채. 

서로가 서로에게, 좀더 따뜻하게, 서로를 존중하면서

그렇게 서로 상처주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살아갈 수 없을까.

타인을 이해하는게 비록 어렵긴 하지만, 최대한의 노력은 기울여야한다.

그 대상이 가까운 사람일수록 특히.

 

 

 

 

우리는 누구도 서로를 다 알지 못한다. 심지어 나 자신마저도.

 

 

 

 

 

이 책은 어디까지나 소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이 겪는 논픽션을 바탕으로 한 픽션이다.

내용이 맞다, 틀리다, 옳다, 그르다 등등을 다 떠나서

이 책 덕분에 지나온 나의 인생, 그리고 남편의 인생도 함께 되돌아보았다.

화이팅. 잘하고 있어.

우리의 삶에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건네며, 

소중한 사람들일수록 더 이해하고 존중하려고 마음속으로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