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은 책

위대한 인문정신의 소유자를 그리워하며 - 김수영을 위하여 / 강신주

by 미뇽쓰 2020. 9. 24.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풀>(1968. 5. 29.) -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배운 여러 시들중 나는 김수영 시인의 시를 참 좋아했다.
단순한 듯 하면서도 의미가 있고, 시에서 왠지모를 결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던중 정재찬 교수가 쓴 책 '시를 잊은 그대에게' 를 읽고

문득 김수영 시인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어져서 시인에 대한 책을 읽어보려고 검색했더니,

때마침 익숙한 (그러나 잘 알지는 못하는;;) 이름의 철학자 강신주가 쓴

'김수영을 위하여'란 책이 눈에 띄어 주저 없이 샀다.

그런데 막상 책을 받아보고서 바로 읽지 못했다.
일단 생각보다 두꺼웠다;;;
그리고 표지부터가 빨간색..뭔가 도발적인 책인데다

결정적으로 강신주 작가의 문체가...뭔가 범접하기 어려운 포스(?)를 내뿜었다.
내가 너무 어려운 책을 골랐나 하는 후회(?)가 살짝 밀려왔다.

 

 

 

김수영을 위하여
국내도서
저자 : 강신주
출판 : 천년의상상 2012.04.23
상세보기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궁금했다.

김수영 시인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리고 철학자 강신주씨는 왜 철학자가 아닌 시인에 대한 책을 썼을까..

꾸역꾸역 근1달에 걸쳐 다 읽은 지금도 솔직히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그래도 이 책 덕분에 김수영 시인이 우리의 아픈 역사를 온몸으로 겪으며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이 있는 시를 많이 쓴 인문정신의 소유자 였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강신주 작가가 힘들고 지쳤을때 김수영 시인의 시에서 많은 위로와 감동을 받고

김수영 시인을 마음속 멘토 삼아 살아왔다는 것도.

 

 

 

김수영 시인

 

김수영 시인의 가족사진(좌측부터 부인 김현경, 모친, 동생 김수명, 본인, 김수환)

 

김수영은 서울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본유학까지 한 지식인이었다.
그리고 역시 그 시절 대학까지 나온 지식인 여성 김현경을 만나 1950년 결혼했다.

(정식으로 결혼식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신혼의 단꿈을 채 깨기도 전 6.25전쟁이 일어나 김수영은 인민군에게 끌려가고,

1개월뒤 UN군의 진주로 자유인이 되어 서울 충무로 입구까지 왔다가 경찰에 체포돼

포로 신분으로 거제 포로수용소로 끌려간뒤 통역으로 겨우 삶을 유지하다가 1952년 12월 석방된다.

그러나 돌아와보니 아내 김현경은 없었다.
김현경은 남편의 생사를 알수 없게되고 살길이 막막해서였는지,

김수영의 동창 이종구와 살림을 차려 살고 있었다.

(이 때의 절망감으로 <너를 잃고>라는 시를 쓴다)
1954년 아내는 이종구와의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김수영에게 돌아오지만,

이미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은 김수영은 아내를 사랑할수도,

그렇다고 돌아온 아내를 내칠수도 없는 상태로 (그가 사고로 죽을때까지) 평생을 산다.

생각해보면 정말 슬픈...마치 한편의 드라마 같은 인생이다.
그런 개인적인 슬픔, 아픔, 그리고 왜곡된 당시 시대상황이

그가 시인이 되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인민군에게는 국군으로, 국군에게는 인민군으로 의심받다

민간인임에도 거제포로수용소 생활까지 하면서

김수영은 '자유'의 중요성, 그 모든 이데올로기, 주의(~ism), 집단을 떠난

인간 개개인의 단독성이 중요함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의미와 형태가 모두 새로운, 시인 자기만의 시를 쓰고자 평생을 노력했다.

그러던 중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나고,

시인은 이제 세상이 변하리라 기대했지만 세상은 결코 바뀌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인은 서럽고 고독한 현실에 절망하지 않고, 자신만의 시를 쓰고 노래하면서

세상 사람 모두가 시인이 되는 세상을 꿈꿨다.

 

 

 

 

 

'김일성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趙芝薰)이란
시인이 우겨 대니

나는 잠이 올 수 밖에

'김일성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張勉)이란
관리가 우겨 대니

나는 잠이 깰 수 밖에

- <김일성만세>(1960.10.6) -

 

 

 

 



1960년, 반공이 서슬퍼런 시절에 (아무리 미발표작이라고는 해도)

이런 초~도발적인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있었을까.(지금도 이런 시는 쓰기 쉽지 않다.)

중요한 건 작가의 말대로 김수영 시인이 공산주의 사회주의자라서 이런 시를 쓴게 아니다.

시인이 만약 북한에서 살았다면 이승만 만세나 박정희 만세 같은 시를 썼을게 분명하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중략)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1965.11.4)--

 

 

 



시인은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만 강한 현실을 보면서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사실은 치열한 노력과 자기반성을 통해

비겁함과 나약함을 이겨내고 당당하고 강인함을 얻었기에 이런 시를 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젊은 시인에게 눈을 바라보며 밤새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뱉자고 했던 시인.
김수영 시인은 순수문학 혹은 참여문학도 아닌

인간 고유의 단독성과 어떤 것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를 그리던 진짜 시인, 예술가, 휴머니스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