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생에게 다정하게 다가와준 물리 - 떨림과 울림 / 김상욱
한동안 독후감 포스팅을 안했다.
2월에 쓴게 마지막이니까, 근 5개월쯤 된거 같다.
그동안 책을 안읽은건 아니다. 어느때보다 많이 읽었다.
(종이책 5권, 전자책 5권 합해서 10권 읽었으니 한달에 2권은 읽은 셈이다)
그런데 왜 포스팅을 안했냐면... 어느 순간부터 글쓰기가 너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원래 나에게 글쓰기는 머리속에만 두기는 아까워서 눈앞에 보이게 적어놓고 싶거나
아니면 가슴속에만 담아두기에는 도저히 갑갑해서 뱉어내고 싶어 하는 일이었다.
독후감 포스팅도 읽고 나서 감명깊었던 부분이나 인상적인 점들을 더 오래 남겨두고 싶어서 시작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게 숙제처럼, 부담으로 다가왔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책을 읽고 나면 그런 의무감이 들어서 다음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이건 아니지 싶어 (그리고 사실 좀 귀찮아진 것도 있고;;) 독후감 포스팅을 그만뒀다.
(그래도 읽고 난 책 내용을 완전히 흘려보내기는 싫어서 독서노트에는 기록했다.)
그래서 다시 5개월만에 독후감을 쓰는 지금, 뭐라고 써야할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독후감 개요로 사용될 독서노트도 없이,
심지어 책은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의 <떨림과 울림>이다.
왠만하면 이과 계통으로 제자들 진로를 정해주고자 했던 내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조차 인정한
그야말로 "뼛속깊이 문과"인 내가
뉴턴역학, 상대성이론, 빅뱅이론, 양자역학이 난무하는 물리학 책을 읽다니.
아무리 친절한 저자가 나같은 독자도 최대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썼다지만, 물리는 여전히 어렵다.
그런데 신기한 건, 정확히 알 수는 없는데도 읽을수록 왠지 끌리고 다음 장에는 과연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졌다는 거다.
그래서 그 어려운 걸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었다.
아마도 저자가 '물리학이 인간적으로 보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인문학의 느낌으로 물리를 이야기했기 때문 아닐까?
인간처럼 지구상에서 자신을 둘러싼 세계(보이든 보이지 않든)의 본질을 알려고 한 생명은 없다.
물리는 결국 세상과 우주의 신비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발전해나간 학문인 것 같다.
작게는 쿼크에서부터 우주의 끝까지, 작은 것과 큰 것의 간격이 머리속 상상의 한계를 벗어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우리 주변의 (사소하다면 사소한) 다툼, 욕심 이 모든 것들이 뭔가 부질없이 느껴진다.
물론 그러다가도 또다시 그런 것들에 목메여 울고 웃는게 우리들 사람인거겠지만.
결국 물리학이 우주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물리는 한마디로 우주에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해준다. 우주는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뜻하지 않은 복잡성이 운동에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거기에 어떤 의도나 목적은 없다. (...) 그렇지만 인간은 의미 없는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존재다. 비록 그 의미라는 것이 상상의 산물에 불과할지라도 그렇게 사는게 인간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게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상상의 체계속에서 자신이 만든 행복이라는 상상을 누리며 의미 없는 우주를 행복하게 산다. 그래서 우주보다 인간이 경이롭다.(p.209~210) |
우리는 세상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고, 앞으로 얼마나 알게 될까?
그런데 저자는 책 말미에 우리가 앞으로 알게될 지식의 장밋빛 전망보다는
우리가 가져야할 (과학적) 태도에 대해 이야기 한다.
우리가 정확히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알지 못하는지) 분명히 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문득 소크라테스의 명언 "너 자신을 알라"가 떠오른다)
과학은 불확실성을 안고 가는 태도다. 충분한 물질적 증거가 없을 때, 불확실한 전망을 하며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과학의 진정한 힘은 결과의 정확한 예측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결과의 불확실성을 인정할 수 있는 데에서 온다. 결국 과학이란 논리라기 보다 경험이며, 이론이라기보다 실험이며, 확신하기 보다 의심하는 것이며, 권위적이기 보다 민주적인 것이다. 과학에 대한 관심이 우리 사회를 보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만드는 기초가 되길 기원한다.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니까.(p.227~228) |
과학에 대해, 물리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저자 덕에 이제부터라도 (유시민 작가 말대로) 물리를 다정하게 대해보려 한다.
저자가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느꼈던 설렘이 나에게도 떨림으로 다가왔으니, 이제 나를 울릴 차례다.